2010/12/21 02:58

 

 세계가 무너진다.

 굳건히 버틸 것만 같았던 대지는 끝에서부터 바스라지며 잔해를 하늘로 아지랑이처럼 올려보냈고 바다는 조용히 방울지며 떠올라 대기를 메웠다. 중력이 사라지기라도 한 듯, 대지위에 올려져있던 모든 것들이 떠오르며 자유를 이루어냈지만 그 대가는 가혹했다. 인간이 만들어낸 건축물과 자연에서 태어난 식물 할 것 없이 모두다 떠올라 허공에서 부유했다. 청명했을 하늘은 잿빛으로 물들어 세계의 종말을 알리는 듯 했고, 태양과 달은 모두 떠올라 대지의 마지막을 여지없이 보여주었다. 부유하는 것들 사이로 무수한 은빛의 아지랑이들이 궤적을 그리며 유영했다. 자유로이 유영하는 아지랑이들이 신비로운 분위기를 내었지만 대지에서 느껴지는 슬픔은 지울 수 없었다.

 대지의 중심, 옴팔로스(Omphalos)인 곳에는 아홉의 사람이 서있었다. 말라비틀어진 거대한 나무가 전부인 황무지의 중앙에서 그들은 조용히 서로를 바라보며 눈빛을 주고받은 후, 고개를 끄덕이며 하늘을 향해 한 명이 손을 들었다.

가운데 한 명을 중심으로 둥근 원을 그리며 서있는 여덟 명 중, 한 명이 손을 들자 황색의 빛이 기둥을 이루며 일어나 그를 감싸고 하늘을 향해 곧게 세워졌다. 기둥이 하늘과 이어지자 그 옆의 사람이 손을 들어 청색의 기둥을 세웠다. 그렇게 시계방향으로 한 명씩, 손을 들어 황(黃), 청(靑), 적(赤), 백(白), 흑(黑), 홍(紅), 녹(綠), 자(紫) 색의 기둥이 세워졌다. 여덟 개의 기둥이 세워지자 기둥들은 빛을 강렬히 토해내며 주변의 아지랑이들을 끌어들였다. 아지랑이들은 기둥들을 타고 춤을 추거나, 주변을 헤엄치며 모여들었다. 그리고, 일순간 강렬한 빛이 폭발하듯 터져나오며 여덟의 사람이 모두 은빛의 아지랑이로 녹아내리며 기둥들을 이었다. 기둥들이 은빛의 선으로 이어져 팔각형을 그려내자 팔각형의 중심에 서있던 마지막 사람이 손을 들었다. 은빛의 기둥이 하늘에서부터 내려꽂히며 그를 집어 삼켰고 그 또한 하나의 아지랑이로 화하더니 기둥을 타고 올라갔다.

그리고.

여덟 개의 기둥들이 위에서부터 흘러내리며 은빛의 기둥을 향해 흘러 들어가 기둥을 타고 올라갔다. 아홉의 색이 뒤섞인 기둥은 주변의 아지랑이들을 흡수하며 더욱 강렬하게 빛을 발했고, 그 빛이 어느순간 포화에 다다르자 광휘와 함께 하늘로 올라갔다.

기둥들이 모두 사라지기 무섭게 세계의 붕괴는 가속되었고

이윽고

옴팔로스에 위치해있던 거대한 나무의 잔해가 바스러지는 것을 끝으로 세계는 무너졌고

누군가가 흘린 눈물만이 공허한 공간을 떠돌아 다녔다.

 

알데르야트력(Alderyate Age) 1천년,

세계는 추락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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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혐오 [自己嫌惡]
 
 
[명사] 자기 자신을 스스로 미워하고 싫어함.
 
 ≒자기염오.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혐오를 조금쯤이라도 했을 것이다. 사람이 성장하는 과정에 섞여있는 '사춘기'라는 괴로운 기간에 접하기 쉬운 매체. 그러니까 TV같은 것들을 보며 타인과 자신을 비교하고 거기서 조금씩은 자신은 왜 저러지 못할까-하는 그런 감정을 가졌을 테니까.

 

 "그러니까, 나는 정상이야."

 

 찬물로 얼굴을 씻으며 A가 뱉어내듯 말했다. 그는 병적으로 얼굴을 씻어내고는 수도꼭지를 신경질적으로 잠그며 세면대 위의 거울을 바라보았다.

 물이 뚝뚝흐르는 얼굴. 무미건조한 표정. 썩어버린 동태의 눈같이 힘을 잃어버린 눈.

 

 재수없는새끼

 

 A는 목까지 차올랐던 역겨운 감정과 말을 억지로 삼키며 화장실을 나왔다.

 그의 집은 상당히 쓸쓸했다. 칙칙한 회색빛의 벽지가 원룸을 둘러싸고 있고, 가구라곤 침대, 옷장이 끝. 그 흔한 TV하나 없이, 냉장고와 컴퓨터만이 놓여져있고 그 이외의 공간은 전부 휑하니 비워져있었다.

  그는 냉장고에서 냉수통을 꺼내 들이키곤 침대에 몸을 던지듯 쓰러졌다.

 

  나이의 앞글자가 1에서 2로 변한지 한참 지났음에도, 그는 이렇다할 행동. 이를테면 '아르바이트를 해서 돈을 벌어왔다.'같은 것을 시도하지도 않은 채 무의미하게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었다.

  손을 벌린채 모래를 쏟는 것처럼 자연스레 흘러가는 시간은 꾸준히 흘러갔고 그렇게 시간이 지날수록 그의 발목을 붙잡고있는 자기혐오는 심해져갔다.

  어릴때 남들에게 꿀리고 싶지 않은 그런 하찮은 자존심에서 나온 거짓말. 이른바 '허세'가 쌓이고 쌓일 수록 그는 혼자있는 시간에 자책하기 시작했고 그 감정은 시간이 지날수록 눈뭉치처럼 커져가 이제는 버티기도 힘겨울 정도로 그를 짓누르고 있었다.

 

  자신의 행동 하나하나가 모두 마음에 들지 않고,

  자신의 외형 하나하나가 모두 마음에 들지 않고,

  자신의 언사 하나하나가 모두 마음에 들지 않았다.

 

  물론 그도 자기혐오가 자신을 이렇게 짓누르기 전에 상황을 타파하고자 대책을 강구해보았다. 하지만 생각에 생각을 거듭할수록 돌아오는 것은 역겨움.

 

 상대가 자신의 것이 아님에도 상대의 행동, 하나하나에 질투를 느끼고

 자신은 용기가 없는 주제에 상대방이 다가와주길 바라고

 남의 고민이나 문제들을 잘 들어주면서 막상 자기에게 그런일이 닥쳐오면 어찌 대처할 줄 모르는 그런 모습이 머리속에 떠오를 때 마다 '자기혐오'라는 괴물은 그의 숨통을 조여왔다.

 

"씨발..."

 

  지금 상황에 와서 그가 할 수 있는 행동이라곤 의미 없는 욕설과 신경질적인 행동뿐. 부질없는 반항뿐이었다.

 

  자신이 칭찬을 받아본 것이 언제가 마지막이었을까.

  머리속에 갑자기 떠오른 궁금증에 A는 '아마득한 옛날'이라고 잠정적으로 결론을 내렸다.

 

  A가 처음부터 저러지는 않았다. 그는 순수한 아이었고, 장래가 촉망되는 글쟁이였다. 어릴때부터 이런저런 대회에서 상을 휩쓸고, 주변에서 잘한다는 칭찬을 수없이도 많이들어왔다. 하지만 언제부터였을까? 그는 주변의 칭찬들이 모두 가식이라는 생각을 했다. 어차피 스쳐가는 인연. 그들은 나에게 관심이 없지만 마주쳐있는 상황동안 어떻게든 잘 넘어가기 위해 한 행동이 칭찬같이 꿀처럼 달콤한 말이었다고.

  

  그렇게 한번 삐딱하게 바라보기 시작하자, 모든 것이 달라져 보였다. 순수한 마음에서 나오는 격려, 응원 들도 보두 같잖아보이고 가식적인 사람들이 주변에 있다는 것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구토가 치밀어 오를 정도로 사람을 싫어하게 되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서 현재까지 왔다.

 

병신같은새끼

 

  이따금씩 머리속을 울리는 욕설.  A는 이불을 덮고 귀를 막아도 들려오는 자신이, 자신을 향해 하는 무의식적인 욕설에 아무 표정 없이 몸을 틀고, 구부려 팔로 무릎을 감싸안았다.

 

 "차라리, 자살할만큼의 용기라도 있었으면."

 

  말라버린 땅처럼 갈라지는 목소리.

  A는 쓸쓸히 눈을 감으며 잠을 청했다. 감은 눈 사이로 눈물이 슬며시 흘러내렸다.

 


-10/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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